사적인 에세이

왜 경계없이 일해야 할까?

2026년 1월 14일사적인 에세이

목적을 위해 부서를 통합하는 결정

logictree 마케터로써 내 우물을 파며 일하고 있었다. 매체와 상관없이 (흔히들 얘기하는 온~오프사이트 풀퍼널 마케팅)은 29CM이 잘 하고 있었다. 그러나 뭔가 '그 이상'의 성과라는 게 나지 않았다. 우리의 목표는 늘 100% 이상 성장이었다. YoY를 이루면 QoQ, QoQ를 이루면 MoM 성장을 해야 했다. 매우 큰 목표를 앞두고, 여전히 시장의 2위인 상황에서 리더십은 2회차 마케팅 조직 개편을 했다.

이번에는 '카테고리 기반'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마케팅팀은 여성패션 1위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성패션 세일즈 팀과 일하기 시작했다. 이때 블랙프라이데이를 마치고 새로운 팀장을 리더로 맞이하기도 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면, 이탈과 유입은 늘 일어나는 일이다. 새로운 팀장님은 발란에서 이미 카테고리 거래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뭐든 해 본' 분이셨다.

어느 날은 회의실에 앉았는데 갑자기 트리를 그리기 시작하셨다. 나의 리더는 화이트보드에 거래액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쪼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레버를 당겨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어떻게 레버를 당길 것인지 그 자리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결론까지 도달했다. 나는 이렇게 효율적인 미팅을 오랜만에 경험해서 잠시 벙이 찌기도 했다. 팀장님은 나를 놀래키고는 빠르게 또 다른 미팅을 하러 사라졌다 ㅋㅋ. 이때 배운 '트리구조'는 아직도 내가 사고를 구조화할 때 잘 쓰고 있다. 퍼널 마케팅에서 계속된 정체를 겪다가 이번엔 뭔가 되겠는데? 라는 느낌을 받았다.

## 세일즈팀과 경계없이 일하기

나는 좋은 리더를 오랜만에 만났다. (물론 그때는 좋은 리더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하드한 코칭 방식에 불만을 많이 표출했던 오만한 시절이었다.) 처음 세일즈팀과 했던 위클리 미팅이 기억난다. 여성패션팀 리더분, 여성패션팀 MD, 마케터인 나, 그리고 나의 리더 이렇게 미팅을 했는데 대차게 까였다. "이거 아니구요. 저거 아니구요. 이렇게는 영업 못 할 것 같아요."였다. 내가 어버버 하고 있을 때 나의 리더는 미팅을 빠르게 종료했다. 그리고 아마 따로 세일즈 리더와 대화를 하신 것 같았다.

대차게 까이고 리더분께 매주 위클리 문서를 점검받았다. 잘 진행되는 미팅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세세하게 코칭해주셨다. 그리고 나도 고민을 논의했었다. 내게 세일즈분들은 너무 '완고해' 보였다. 대체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할 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때 1:1으로 진짜 얘기를 들어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해주셨고, MD분들과 먼저 1:1을, 그 이후에는 여성패션 리더분과 1:1을 했다.

난 처음엔 놀랐다. 생각보다 화수분처럼 하고 싶은 말들이 많으셨던 것이다. MD는 현장에서 브랜드의 온갖 요청을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정말 밤낮없이 일하고 있었다. 나는 '트렌드'와 '데이터'에 기반해 일을 하고 있었지만, 현장에서 브랜드와의 일하는 얘기를 들으니 패션 산업 전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동대문과 브랜드간의 관계, 브랜드와 MD, 브랜드사 내의 MD와 브랜드 대표, 브랜드 대표와 29CM간의 관계도 이해하게 되었다. 생생한 현장의 얘기들을 듣고 나니 이 생태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브랜드가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브랜드는 29CM에 브랜드가 갖지 않은 능력들(콘텐츠와 마케팅)을 통해 더 브랜드의 고객을 확장하고자 입점한다.

그걸 알고 나서는 세일즈팀과의 관계도 좋아지면서 성과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세일즈팀이 늘 '이런 마케팅'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걸 우리는 같이 실험하고, 위클리 미팅에서 KPT를 함께 회고했다. 그리고 다음주에 브랜드와 영업을 하기 위해 브랜드별로 어떤 마케팅을 하면 좋을지 얘기했다. 매주 브랜드별 맞춤 마케팅 컨설팅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매일 데이터를 보며 'rising signal'을 발견하려 했다. 내부 데이터보다 외부 데이터가 빠르다. 외부 데이터에서 예상치 못한 시장의 흐름(인플루언서 착용, 특정 트렌드의 급부상)을 여느 플랫폼보다 먼저 잡아서 빠르게 대응했다.

29CM의 이런 '경계없는 협업' 마케팅은 브랜드 내에서도 입소문이 났다. 경쟁사가 따라 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라이브팀, 제휴마케팅 등 정말 모든 마케팅 수단을 가리지 않고 브랜드(=파트너) 성장을 위해서, 그리고 그게 거래액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 모두가 매분, 매초 합심하여 일했다. 라이브를 켜고 매출이 튀자마자 트래픽이 몰리게 하기 위해 바로 프로모션을 추가로 붙이고, 모든 노출을 부었던 열정들이 기억난다.

## 제품팀과 경계없이 일하기

wanted 마케터는 반복되는 손 세팅 작업의 늪에 빠지기 마련이다. 개인화는 정말 치트키다. 개인화는 하면 할수록, 성과가 잘 난다. 나라는 인간의 손이 가진 한계가 이 성과를 막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제품팀에 마케터가 가지고 있는 푸시 메시지의 성과를 보여주며 이를 자동화 시켜달라는 요청을 많이 했다.

그리고 Activation 스쿼드 PO, Contents 스쿼드 PO가 이 임팩트에서 성과의 냄새(?)를 맡은 것 같다. 같이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마케터인 내가 PO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Why not?이었다. 한번 경계없는 협업을 맛보고 나니 두려운 것도 크지 않았다. 그리고 난 진심으로 이 손세팅이 더 자동화되면 임팩트가 날 것 같았다. 이제 브레이즈 딸깍 마저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때 제품이 생각하는 방식, 소프트웨어가 동작하는 논리 에 대해서 조금씩 이해했다.

1) 같이 일했던 PO들은 고객에게 집착적이었다. 정말 뾰족하게 Success metric을 설계했다. UX writing 단어 하나까지 최상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테스트했다.

2) 실패 비용을 줄이기 위해 손으로 미리 테스트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푸시는 좋은 A/B 테스팅 도구이며, 시트는 좋은 DB다.

이때 처음 OK product이 아닌 WoW product이 무엇인지 알았다. 어떤 제품이 PMF를 찾으면 정량적 결과와 정성적 결과가 동시에 나온다. 당연히 지표는 목표 이상이었고 (6배 상승), 고객과 업계가 바뀐 푸시 메시지에 대해 먼저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9CM 채용을 위해 글을 하나 발행했다.

고객집중이 만든 푸시 클릭률 6배

이 글은 아무것도 안했는데 소문이 나고, 인터뷰 요청이 오고, 강연 요청이 올 정도였다. PMF가 나온다는 건 이런 경험이었다.

이 제품이 내게 좋은 인연을 많이 줬다. 이때 만난 DA, 그 DA가 소개한 다른 DA와 인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때 만난 PO 두 분은 나의 리더들이 되었다. 나는 콘텐츠 스쿼드 PO와 함께 첫 PM 커리어를 가꿔나갔다. 함께 고생하는 동료같은 리더는 잊지 못할 좋은 팀을 선물해줬다. 그리고 추후 이때의 액티베이션 스쿼드 PO와 SLDT와 무신사에서 일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를 함께 경험한 리더는 Feedback과 Humble이라는 큰 가르침을 줬다. 두 번의 Turn around point를 맞이했다.

## AI 시대에 경계없이 일하기

AI 시대에 경계없이 일한다는 것은 nice-to-have가 아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생산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나는 도메인 전문가 마저도 AI가 따라잡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사람은 Orchestra의 능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경계없이 일하는 것은 '설득'이라는 정치 능력을 키우기에도 유리하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고민하는지 잘 듣고 이해하면,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더 합리적인 말을 하게 되고, 그럼 조금씩 따라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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