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End
어디에 있을지 모르지만 무한히 응원하는 소신있는 마음들에게.
해피엔드는 유타와 코우가 클럽에 들어가는 신으로 시작한다. 유스케 유키마츠의 음악을 듣기 위해 클럽에 잠입한 둘은 한 순간의 해방감을 느끼고, 존경하는 클럽신의 주자에게 데모를 받기도 한다. 음악을 즐기는 데 경계가 필요없음을 행동으로써 보여주는 둘 이다.
안전을 명목으로 보수 정치인들의 로비에 학교 기금을 낭비하는 차를 뒤집어 세운다. 극의 배경에는 일본에서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네 바퀴를 땅에 딛고 있으면 명예와 권력의 상징이지만, 두 바퀴만 땅에 딛을 때는 흔들리면 부서질 수 있는 스포츠카. 두 명이 만드는 바람은 이때부터 시작이다.
현실의 벽에서 다른 길을 가는 친구들
이때부터 '판옵티콘'과 같은 감시카메라가 학교에 설치되고 역시나 규율은 허술하다. 허술한 규율에 부당한 처벌을 받는 학생, 허술한 규율을 통해 자유를 몰래 빼가는 학생들 모두 생겨난다. 이때부터 유타와 코우의 분열도 생겨난다.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일부 이민자의 범죄를 '이민자 = 범죄집단'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보수 정치 세력은 안전경보를 선포한다. 평범했던 일상이 무너진다. 학생은 밤 늦게 돌아다닐 수 없고, 이민자 학생은 신분증을 소지하지 않으면 소명해야 한다.
현실을 포기하는 유타, 현실에 저항하는 코우는 육교에서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외치지만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고는 육교의 반대편으로 걸어간다. 코우는 저항하는 과정에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포기한 친구에게 실망하기도 하지만 결국 코우를 돕는 건 유타였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더라도 친구를 위해 희생한 코우는 유타가 어색해하고, 미안해하자 젖꼭지를 꼬집는 장난을 친다. 이때 HAPPY END 가 울려펴지고 그 따뜻한 마음을 관객이 간직하게끔 한다.
다른 길을 가도 멋진 사람들
이 영화는 대학생때 같이 가치관의 갈등을 겪었던, 여전히 겪고 있는 친구와 '아트하우스 모모'라는 우리에겐 의미있는 공간에서 봤다.
대학생때는 내가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나 행복한 불평이었는지 알았다. 본인의 정체성이 지워지는 사람, 평생을 정착할 수 없는 사람, 최악의 최악을 겪는 사람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 생각보다 불평등은 대다수가 겪는 경험이었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 찍 소리를 내봤다. 그때 함께 스크린을 통해 소리내던 친구들, 선배들이 다양함에 무엇보다 감사해한다. 큐레이터로서, 같은 PM으로서, 작가로서, 활동가로서, 연구생으로서 각자의 위치에서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게 멋있다. 더 멋있는 점은 세상이 거지같이 돌아갈 때 항상 같은 광장에 있다는 점이다. 어디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사람다움의 조건, 양심만큼은 더럽혀지지 않기를 최선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