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목적 기반의 마케팅 조직 개편
대행사에서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던 내가 매체 최적화에 집중할 때, 목적 기반으로 마케팅 조직이 개편되었다.
돌아보면, 목적 기반의 조직 개편이 나에게 이다지도 많은 기회를 줄 지 몰랐다. 마케팅실은 Primary Target Customer를 정의했고 해당 고객을 유입하고 잔존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액션을 하기 시작했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다보면 매체/소재/입찰 실험 등을 하기 마련이다. CPA가 10% 올랐다 내렸다 이런 거에 목 매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하면 시야가 넓어진다. 어떻게 29CM에 맞는 고객을 데려오지? 라는 고민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나는 내 업의 본질, '마케팅'이라는 게 뭐지?에 대해 고민해보기 시작한 것 같다.
Primary Target Customer
어떻게 29CM에 맞는 고객을 데려오지?를 고민하다보면 1)우리에게 맞는 고객은 무엇인가 2)그 고객은 어디에 있는가 3)그 고객은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를 생각하게 된다. 내가 빵집을 차렸는데 어디에 입지를 만들고, 어떤 고객에게 입소문을 어떻게 타게 할 것인지 등을 고민한다. 1)은 상당히 어려운 고민이기 때문에 훌륭한 리더분들이 세운 정의를 따라갔다. 29CM은 Primary Target Customer를 PTC라고 부르며 2535 여성이며 보세 쇼핑몰 의류를 소비하다가 소득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자연히 '나만의 것'을 표현하고 싶고, 그를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찾는 여성들을 페르소나로 정의했던 것 같다.
1)은 잘 이해했는데, 2)/3)은 어떻게 하지?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내가 그 고객이 되는 수 밖에 없다. 나는 운이 좋게도 내 주위에 브랜드 기반의 소비로 전환한 동년배 여성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 29CM을 어떻게 쓰는지, 특히나 가장 인게이지가 깊게 쓰는 친구들이 왜 쓰고, 뭘 사는지 등을 물어보고 염탐했다. (친구의 인스타그램을 자주 훔쳐봤다 ㅎㅎ). 29CM의 high engagement user는 미감을 중요시했고 본인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어서, 본인 스타일과 비슷한 브랜드가 있으면 '경험'하기 위해 쇼룸을 가거나, 인스타그램 자사몰을 팔로우하며 신상을 보고, 구매했다. 물론 내 친구뿐만 아니라 29CM의 팔로워들의 인스타그램을 역으로 추적해보기도 했다. 내가 이 시장을 깊이 있게 사용하는 유저가 되기도 했다. 나는 보세 쇼핑몰의 옷을 입던 사람인데 이때부터 내 취향에 맞는 브랜드를 좋아하고, 신상 소식을 좋아하며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보니 2), 3)에 대해 감이 잡혔다. 우리의 high engagement user들은 자사몰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있고, 브랜드가 새로 발매하는 컬렉션에 관심이 많다. 해외의 패션위크를 보듯이 디자이너의 새로운 디자인과 그에 담긴 스토리를 좋아했다.
브랜드와 디깅
아주 명확한 사실은 그러다보니 29CM의 유저들은 브랜드 위주로 사고한다는 걸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와 유사한 스타일의 브랜드를 디깅하며 찾아갔다. '디깅'은 레코드 음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취향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명반'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내가 이 시장의 유저가 되어보니 '디깅'을 통해 새로운 브랜드를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럼 '브랜드'라는 키워드를 찾아냈으니 당연히 마케터로써 나는 브랜드에 집중한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29CM은 원래 Paid DA, SA만 운영했었다. Owned media 관리나 CRM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브랜드 집중된 소재로 브랜드 관심 유저를 타겟팅하여 외부 매체를 통해 도달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고객이 정보의 홍수들에서 어쩌다 한번 그 배너 광고를 보게 되기 때문에 스쳐 지나가기 쉬웠다. 또한 나한테 '왜' 이게 뜨는 건지 알 수 없기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29CM은 메시징 채널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기반없는 땅을 개척하기
특히 CRM을 추가한 것이 29CM 마케팅에서는 하나의 전환이었던 것 같다. 리더분들과 카카오톡 메시지, 알림톡, LMS를 추가 운영하자고 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메시지 채널을 브랜드 마케팅에서 브랜딩을 위해서만 보내고 있었다. 퍼포먼스용으로 이 매체들을 활용하려고 하다 보니 노가다의 연속이었다.
우선 첫번째, 메시지를 보내본 적이 없었다. 메시징 채널들은 플랫폼을 통해 보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플랫폼이 없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NHN Cloud와 비슷한 플랫폼 어드민에서 하나 하나 직접 발송했다. '마뗑킴'을 좋아하는 고객들에게 '마뗑킴의 신상소식'을 알리는 1번의 발송은 가능하지만, 나는 더 다양한 세그먼트에게 다양한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성과가 날 게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엑셀 bulk upload로 변수들을 모두 함수로 조합해서 보냈다.
그래서 대형 사고를 냈다. 어드민에서 bulk upload로 보내는 방식에서 잘못 조합된 정보가 나갔다. 정보보안 이슈로 번져 KISA 접수까지 갈 뻔 했다. 그러나 나는 이때 리더분들의 대처방식을 보며 많이 배웠다. 꽤나 큰 사고였어서 메시지를 보내지 말라고 하거나, 경위서를 쓸 줄 알았다. 그러나 리더분들끼리 장애 채널을 만들고 개인을 탓하지 않고, 빠르게 문제의 root cause를 찾고 재발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했다. 이때 29CM은 서비스 플랫폼팀에서 메시지 플랫폼이라는 걸 만들고 안전하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천성적으로 반복 작업을 매우 싫어한다. 대학생 때 월세를 내기 위해 카페 알바, 학원 숙제검사 알바를 하던 때에 가장 불행했다. 그래서 반복 작업은 자동화하거나 프로세스화 하길 좋아한다. 과거 대행사에서 일할 때는 SA 세팅 엑셀 작업을 하기 싫어서 유튜브로 학습해 VBA 파일을 자주 만들었었다. '브랜드' 군집을 중심으로 세그먼트를 말아서 N회 보내는 반복 작업을 하기가 싫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일을 덜 할까 고민하다가 구글 서치를 딥하게 하기 시작했고, 이미 푸시 메시지를 보내고 있던 브레이즈에서 API trigger, Liquid 구문 등 얕은 코딩을 하면 내가 원하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하루에도 세팅의 양이 엄청나게 많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반복 작업이 내 시간을 쓰레기처럼 쓴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주말을 full로 투자해서 브레이즈 Liquid 구문을 배우고 써보기 시작했다. 대행사에서 퍼포먼스 마케팅을 할 때 MMP나 Facebook developer 문서를 읽어서 고객사에게 설명해야 할 일이 많았었다. 그래서 개발자 문서를 읽는 데 익숙한 상황이었고 Braze도 lecture video와 개발자 문서를 무작정 다 읽었다. 그리고 브레이즈 창을 띄워서 적용해봤는데 개인화가 되길래 재밌었다.
이때 설득의 방법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기획전과 매출 목표가 빠듯한 상황에서 '자동화'는 상당히 럭셔리해 보인다. 그래서 바로 개발을 요청하는 건 설득이 되지 않기 쉽다. 간이로 동작하는 것을 보여주고, 이의 기대 임팩트를 계산해서 Braze에 필요한 일부 개발을 요청했다. Braze에 유저 속성(attribute)이나 event property를 넣어서 개인화한 사례를 찾기 시작했고 무신사 데이터 마케팅 담당자를 만났다. 사례와 방법, 효과까지 레퍼런스까지 찾으니 성공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GA event, Amplitude event를 Braze용으로 marting해서 import하는 배치 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왜 이렇게까지 했나?
내 성격 때문이다. 꽂히면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래서 "될 것 같은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재밌기도 했다. 학생 때부터 수학 문제 푸는 걸 좋아했다. 될 것 같은데? 하면서 끈질기게 풀다가 되면 쾌감이 엄청나다. 그리고 새로운 걸 배우는 것도 좋아한다. 깊이있는 몰입과 학습의 과정을 좋아하다보니 처음에는 삽질을 하다가 어느 순간 스펀지처럼 지식들을 흡수한다. 그렇게 하고 나면 '성공'에 가까워지는데, 이 성취감이 묘하게 중독적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우물을 파지 않으면 새로운 시도는 나오기 어렵다. 옆에서 우물을 파고 있으면 보고 따라 파는 사람도 생겼다. 이때의 시도들과 동료들의 열정, 리더분들의 지지 덕분에 29CM은 개인화 마케팅으로 한 때 유명해졌다. 국내에서는 개인화를 성공적으로 한 곳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물을 파다보면 이미 우물을 판 사람이 해둔 게 있고, 우물은 파 본 사람이 계속 판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