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에세이

발전을 위한 영화 시나리오 - 2부

2026년 2월 3일사적인 에세이

목차

  • 서문
  • #5. 혼자 견딘 401호에서의 24시간
  • #6. 마비된 여주 공장
  • #7. 커피나인에서의 번복
  • #8. 끝을 직감한 공유오피스 피어스
  • 지나고 나서의 회고

서문

이 글은 발전을 위한 영화 시나리오 - 1부의 연장이다. 과거의 기억을 기록하고, 미래의 시점에서 재구성하며, 근본 원인을 파악한다. 앞으로는 런칭 후의 시간에 대한 시나리오다. 1부와 달리 2부는 대부분 발전된 결과들이 있어 영화 시나리오가 복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5. 혼자 견딘 401호에서의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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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나
버그 잡이(bug bash). 우리는 2주 동안 모두가 달라붙어 버그만 잡을 정도로 시스템이 불안정하다. 내일 새벽 3시면 아무것도 배포해서는 안된다. 그 전에 예외 동작은 당연히 제대로 잘 안 될거고, 정상 동작이라도 제발 제대로 작동하길 바라는 게 목표다. 이 제품의 전체는 나와 소수의 인원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계속 빈 구멍이 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Acting Lead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니어 엔지니어 리더 C (C는 발전을 위한 영화 시나리오 - 1부에 등장한다.)는 엄청난 학습 역량으로 대부분을 빠르게 숙지했다.

버그가 잡아도 잡아도 끝이 안난다. 밤 9시쯤 넘어가자 "또 있어요?" "또 예요?" "이거 안되겠는데요?"라는 목소리가 계속 나온다. 나는 되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버그 list에서 owner, task, eta(이번엔 estimated time 이겠다.)를 추적해야 이 버그 소란이 끝이 날 것 같다. 그래서 추적을 하기 시작한다. "죄송하지만 완료 시각이 대략 어느 정도이실까요? 버그가 너무 많아 관리가 안될 것 같아 묻습니다." 버그를 고칠 수 있는 역량은 없으므로 발견하고, 추적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401호에서 중간점검을 하는데 나는 지적을 받았다. "지금 고치고 싶으신 거예요, 아니면 문제를 계속 만들고 싶으신 거예요?". "문제를 지적하는 의도가 아니며, 런칭 직전에 있어선 안될 버그가 있고, 그걸 고치고 나가야만 하기에 관리했다"고 답한다. 나는 엔지니어가 아니고, 엔지니어의 문제를 계속 지적했다고 공격성을 느꼈을 수 있다. 또한 엔지니어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시간이 걸리는데 나는 이를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때 나는 곪았던 나의 심리적 문제가 한번에 터진다. 나는 개발을 못하니 문제를 직접 고칠 수도 없네. 이 부분이 트리거로 대체 난 뭘 할 수 있지? 라는 생각까지 번졌다. 401호에서 도저히 나갈 수 없다. 눈물과 그 눈물을 참느라 나는 소리를 막아보려 했으나 계속 새나간다. 그래도 일을 해야 하니 슬랙을 키고 원격으로 일한다. 일하는 와중에도 수도꼭지를 튼 것 마냥 눈과 코에서 물이 마르지를 않는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싫다. 그러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런칭은 해야만 한다. 입고 있던 상의 대부분을 물을 닦는데 쓰며 끝까지 이 과정에 함께 한다.

그간 내 문제가 아니어도 "PO는 Owner니까 감내해야만 해."하고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그냥 욕을 듣는다. 되게 하기 위해 자존심 따위는 다 버린다. 나를 돌볼 시간도 없었다. 나는 주말에도 미친듯이 일하며 런칭 후에 내가 바라던 꿈을 계속 상기했다. 드디어 0 to 1을 해보는구나. 내가 바랐던 패션의 생활양식(습관)을 바꾸는 제품이 나오는구나. 현실은 바퀴벌레 같지만 꿈은 유니콘처럼 꿨다.

모든 이슈를 수습하고 나서 조금은 감정을 정리하고, 내 리더에게 401호에서 도저히 못 나갈 것 같으니 내 가방을 회의실 문 앞에 놓고 가달라고 부탁한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상황이 종료되고 사람들이 퇴근한다. 나는 401호에서 나갈 수 없었고 여전히 감정을 다 추스르지도 못한 채 팅팅 부은 얼굴이다. 이 모습이 추해서 아무한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내 리더는 이때까지 본인이 개입하지 않아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고맙다고 한다.

런칭은 새벽 4-5시쯤 진행된다. war room에서 런칭을 하고 10개가 넘는 각 도메인이 코드를 배포한다. 배포하자마자 또 이슈가 터진다. 시스템의 코어인 상품 도메인의 문제다. 담당자가 퇴사해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누군가 나서서 이 문제를 수습한다. 나서서 수습하는 그 사람이 속한 팀을 부러워 한다. 나는 이슈들을 수습하다가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잠시만 쉬고 돌아오겠다고 한다. 새벽 내내 수분이 너무 빠져나가 몸에 에너지가 하나도 없다. 보건실 침대에서 몇 시간 쪽잠을 잔다. 아는 목소리의 인기척이 들렸지만 내 얼굴이 너무 흉한 상태라 내가 이 공간에 없는 척 한다.

보건실 침대에서 그간의 일을 팔로업하고, 택시를 타 집으로 이동해 마저 일을 한다. 고객과 창업자가 깬 아침이 되자 또 다시 소용돌이가 시작된다. 장애없는 장애선언이 내려진다. 장애는 없었으나 구색, 마케팅을 포함한 이 제품의 전체적 퀄리티에 실망한 창업자의 1급 장애선언이 시작된다. 이 조직뿐만 아니라 전사의 관심이 갑자기 쏠린다. 모든 헤드가 이 제품에 달라붙고, 이 제품을 만족할 만큼의 퀄리티로 만드는 데 24시간 정도 전력을 쏟는다.

  • 이 사건을 재구성한다면 어떨까
나는 비현실적인 목표가 나을 결과를 예견하고 참담하지만 겸허히 받아들인다.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설득의 한 방법임을 인지한다. 1차 결과는 나쁘더라도, 조직이 재정비되는 2/3차 결과가 있을 것이다. 안 좋은 결과를 알더라도 맡은 바 최선을 다 한다. 그러나 너무 감정적으로 몰입하지는 않는다. 안되는 걸 되게 하는 데 심하게 매몰되지 않는다. 단지 현실적인 결과는 X이지만 나의 꿈은 Y이므로 나는 지금 Z라는 최선의 행동을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낸다.

장애없는 장애선언의 결과도 받아들인다. 비현실적인 런칭일을 commit할 때부터 예견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나는 각 순간에 사려깊게 반대하고, 결국 커밋한다. 그 커밋을 할 때 이런 결과들도 예상한다. 그리고 최악의 시나리오와 대응책도 미리 생각해두고, 현실감각을 위해 리더에게 보고한다. 이런 결과여도 나는 '되게 한다'라는 가치관에 베팅했으므로 감내하기로 결심한다. 앞으로의 과정에서 더 많이 배우는 것을 얻기로 한다.

  • 왜 이렇게 재구성했는가
<현상> 나는 일에 매몰된 결과, 나 자신이 무너졌다.

<근접원인> 나는 Owner라면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근본원인> 나는 모든 원인을 나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만이 통제 가능하기에 이 방법이 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루션> 나는 Disagree & Commit을 제대로 한다. 조직의 문제와 나의 문제를 분리한다. 자아를 지킨다.

돌아보면 나는 이 시간을 이렇게 견딘 내가 안쓰럽다. 내가 참았던 고난들이 곪아 여전히 흉터로 남아있고, 이 흉터는 시간이 꽤나 지나야 없어질 것 같다. 나는 이 시간을 떠올리는 가끔 다시 수도꼭지가 열리는데, 아무에게도 이 문제를 토로할 수 없다. 그래도 글이, 내가 이 시간을 다시 돌아보게 해줌으로써 나의 상처를 직면하고 치료하게 해준다. 고맙다.

#6. 마비된 여주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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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나
이 서비스는 백도어 운영을 여주 공장에 두고 있었다. 나는 검수, 물류 등의 공정을 담당하는 든든한 동료들이 있었기에 이 부분은 덜 신경쓰고 있었다. 그러나 런칭하자마자 이슈가 터진다. 런칭 후 고객의 불만도 미친듯이 터졌는데, 그를 신경도 못 쓸 정도로 운영이 마비된다. 내가 이 시그널을 감지한 것은 #5의 이슈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고 나서, 자세히 다른 상황을 살펴 보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이런 생각부터 든다. "아.. 또 태풍이 시작되었다." 공장 입구에는 처리되지 못하는 물량들이 벽을 쌓고 있다. 최소 몇만 단위다. 런칭 버그가 해결되니 이제 운영의 문제가 터지는구나.

나는 온라인으로 문제를 관찰하다가 안되겠다는 판단을 한다. 그 계기는 책임자들에게 VoC 리포트를 전달할 때다. 플랫폼 양 사이드 고객의 불만이 터지고 있는데 이를 보고하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운영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운영 문제가 현장에서 시스템으로 들어오는 문의 채널에서 드러난다. 시스템이 Create는 되지만 Update는 안된다고 한다. 물량을 잃어버려서 도대체 주인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VoC가 들어왔는데 원인을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난장판'. 딱 이 단어만 머리에 떠오른다. 고객의 문제보다 중요한 문제가 대체 어디 있는가? 속이 터질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며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운영의 문제를 빨리 해치우기로 한다.

이 문제는 관리의 문제임을 인지한다. 제품뿐만 아니라 사람의 품질 관리도 되지 않고 있으며, 책임감 있는 2-4명의 인원이 실무와 관리의 역할을 병행하며 하드캐리 하고 있다. 안되는 결과가 당연하며, 하물며 사람의 실수 (human error)를 보완해 줄 시스템도 여력이 없어 단방향으로 설계되고 배포되었으며, 심지어 일용직 비전문가에게 사용된다. 이를 상위에 보고해도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한다. 상위의 입장을 들어보니 그들의 입장도 있다.

일단 일이 되게 해야 하므로 여주로 출근하기로 한다. 약 2주간 출근하며 이 문제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보고하는 브릿지 역할을 하기로 결심한다. 여주의 총관리자이자 사업실장이 내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제발 좀 살려주세요." 이 사람은 감정이 없나? 싶을 정도로 철저하고 냉정한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나한테 내려놓고 이를 부탁할 정도면.. 이건 진짜 심각한 거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내게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제품과 사업이 지금 서로 믿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저는 red flag라 생각해요. 저는 이게 제일 위험한 것 같아요.". 나는 정말 답답해 한다. 사업은 제품의 도움이 필요하다.

각자의 생존 입장이 있고 이게 지금 위기 상황에 있으니까. 각자 본인 팀의 구성원을 보호하기로 위한 선택을 하는구나. 그 구성원에 나도 있구나. 다른 건 모르겠고, 입장 차이도 이해했으므로, 나는 제품에 이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고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1-2 page를 써서 사진과 함께 디테일한 문제/원인/솔루션에 대한 판단들을 공유한다. 기술은 사람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이다. 기술의 결함을 사람으로 막는 건 여전히 나는 비겁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팀의 실력이 부족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맞다. 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C와 나의 리더를 포함한 사람들이 공장에 직접 가서 이 문제들을 직접 진단하고, 나는 그 브릿지 역할을 한다. 시스템 개선을 위한 다음 분기 OKR이 세워진다.

  • 이 사건을 재구성한다면 어떨까
이때는 재구성할 게 없다. 나는 이때의 나의 행동에 반성도 후회도 없을 정도로 떳떳하다. 이때 내가 여주에 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진행했다. 그리고 추후 그들은 나의 문서와 나의 노력에 대해 인정했다.

아쉬운 점은 있다. 1) 다른 이해관계에 있더라도 현재 사업조직의 기이한 책임 구조에 대해 리더십에 인지시킬 수 있었다면 좋겠다. 이 또한 사려깊은 반대를 바탕으로 말이다. 2) 나의 Acting Lead 역할이 사업과 운영의 개입을 의미할 수도 있음을, 그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견하면 좋겠다. 언제나 최악을 예측해두는 건 마음을 냉정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왜 이렇게 재구성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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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커피나인에서의 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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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나
우리는 런칭 후 한달이 되지 않아 일하는 방식의 전면 변화를 마주한다. 그건 내가 그간 조직이동을 해온 원인이었던 '기능조직 전환'이다. 나는 이 결정을 통보받고, 내게는 선택의 권한이 없다. 여전히 고객의 문제들은 터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 문제들이 있고 이를 이 제품을 맡은 리더들은 모두 공감함에도, 우리는 문제의 경중과 무관하게 창업자가 얘기한 월 당 100가지가 넘는 문제들을 ASAP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 중 Top VoC와는 무관한 것들의 비중이 높다.

나는 고객을 추정해서 망한 경험들이 있고, 다시 이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런칭 전에는 참을 수 있었다. 나는 모든 디자인을 창업자에게 컨펌받지만 컨펌의 자리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N차의 디자인 수정, 런칭일에 swing이 있을만큼 큰 기능 추가를 하는 과정이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이 팀은 창업자라는 투자자와 관계를 맺었기에 인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런칭만 하면, 런칭만 하면..". 데이터에 기반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야 한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고통이 몰려온다. 사용자들이 언제/무엇을/어떤 감정을 느끼며 이 서비스를 사용할 것이라 상상했던 구체적인 미래가 무너진다. 더 이상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어진다.

이때 과거 직장 상사들의 오퍼를 받아 여러 곳의 면접을 본다. 그리고 나는 한 면접에서 나의 최선과 나의 결과는 별개라는 가혹함을 마주한다. 나의 경력에 대해 나름 준비를 하고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준비한다. 그러나 나는 계속 나를 속인다. 지표가 형편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최선'을 빌미로 이 정도면 성공이라 대답한다. drill-down 질문들에 대답하며 내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걸 자각한다. 인터뷰가 끝나자 허망한 감정을 느낀다.

나는 이 감정을 기반으로 스스로에 대한 부족함을 처절히 느낀다. 내가 성과라 생각했던 것들이 결과로 드러나지 않으면 시장에 아무 경쟁력이 없구나. 나는 기능조직으로 바뀌고 버틸 수 없을 것 같다며 퇴사를 얘기했었다. 내 리더가 본인의 집 근처로 초대하며 처음이자 마지막 술을 사줄 정도로 작별 인사까지 했었다. 그러나 나의 오만함을 깨닫고는 다시 이 서비스가 안정화될 때까지는 적응해보고 싶다고 한다. 내 리더가 집 앞 커피나인에 찾아오고, 나는 내 밑바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네가 그만둔다고 하니 막다른 길이 왔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요즘 이 시기를 어떻게 버티냐"고 묻는다. 그는 본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본인이 너무 힘들어 약을 먹고 있고 최근 부모님이 집에 와서 내 약봉투들을 발견하고는 그만둬도 된다고 얘기했다 한다. 오히려 그는 더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기 위해 이 시간을 버티고 싶다고 한다.

  • 이 사건을 재구성한다면 어떨까
나는 내가 무엇이/ 어떤 측면에서 / 왜 오만했는지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다. 결과로 보여줘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떳떳할 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돌아본다. 그리고 조직이라는 시스템을 이해한다. 우리는 결과를 못냈으므로, 우리의 방식에는 여기에서는 문제가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2달 후에서야 인식할 수 있었다.).

창업자가 가장 고객에게 집착하는 사람임을 잊지 않는다. 창업자는 왜 그런 이니셔티브를 내렸을지에 대해 깊이있게 고민한다. 그리고 왜 다른 문제보다 이가 우선일지에 대해서도 고민한다. 최근 창업자가 결정해야 할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우선순위 결정과 기억력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익히 들었다. 고객의 문제를 더 우선순위로 올리기 위해 어떤 명분, 증거를 기반으로 설득할지 리더와 전략을 세운다.

  • 왜 이렇게 재구성했는가
<현상> 나는 리더에게 큰 상처를 주면서까지 Commit하지 못했다.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시하지 못한 결과는 '번복'이라는 가장 비겁한 의사결정을 낳았다.

<근본 원인> 나는 오만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창업자의 탑다운에 의해 퇴사했으나, 돌아보면 난 내가 오만했다 생각한다. 10년에 가깝다. 그가 나처럼 절박하게 이 사업이 바꿀 사람들의 미래에 대해 기대하고, 고민한 것에 비하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창업자의 생각을 귀추하는 과정에서 내가 더 배울 수 있었다. 그때는 어리석게도 자아장벽이 나를 막고 있어서 몰랐다.

<솔루션> 나의 오만함을 빠르게 깨닫고, 창업자와 나의 리더가 그렇게 의사결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려 한다.

#8. 끝을 직감한 공유오피스 피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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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나
기능조직으로 바뀌는 것은 조직의 계획 중 일부였다. 이 조직의 리더들이 전체로 모여 이 신사업의 문제들과 다음 분기 미래에 대해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얘기하는 워크숍이 생긴다. 그때 이 팀은 어리석게도 이 조직의 제품 <> 사업 불신과 갈등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노련한 C레벨은 3문장이 안되는 워딩들에 바로 눈치를 챈다.

이 미팅은 원래 실무자가 아닌 리더만 참여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나는 특정 계기로 관찰자로 참여한다. 갈등이 공개적으로 보일 때 망함을 직감한다. 그리고 어찌저찌 이 워크숍이 끝난다. 다들 점심을 먹으러 이동하는데 나는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까지 남고 마지막에 나가는 사람을 본다. 이때는 기존 사업리더가 퇴사한 이후이고, 새 사업리더와 내가 처음 대면하는 자리다. 미팅이 끝나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 나는 기존 사업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그 사람은 표정이 굳다 못해 썩어 있다. 나는 이때 다가올 미래를 감지하지 못한다.

#7에서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이 조직에 다시 한번 적응해보기로 한다. 물론 이 끝은 내가 이직하는 것임이 예상이 된다. 왜냐하면 1)오너십이 강한 나와 이 방식은 여전히 맞지 않다. 2)"현 조직이 기능조직이 된다"라는 의미는 단순히 function 조직이 된다는 게 아니다.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는, 이미 많이 망가져버린 문화의 조직에 들어간다는 의미다. 그래도 이 말을 가슴에 새긴다. 나의 리더는 "Commit은 내가 진심으로 따르고 그 결정을 할 때 불행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래, 안맞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진정한 Commit을 하지 못한다면 불평하는 사람들이 되기보다 떠나는 게 맞다. 그게 전체 관점에서 낫다."라고 생각한다.

나는 next를 내 리더에게 공개하고, 준비하면서도 현재의 일들에는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중간중간 또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뛰쳐 나왔지만, 그래도 이 이후에는 따르려 노력한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예견된 미래를 마주한다. 나의 리더는 본인의 자리에서 밀려난다. 그 이유는 제품과 사업의 충돌이다. C레벨은 이 충돌을 없애기 위해 단순화를 택한다. 새로 온 IC가 사업과 제품 리더를 겸임한다. 나는 리더가 말하지 않아도 내게 들려오는 정보망에 의해 이를 알고 있다. 그래도 소신 하나는 버리지 않았고, 나와 공유한 이 제품의 미래를 끝까지 믿었던 이 리더와의 인연도 이제 끝났다. 그에겐 다시 도전할 기회도, 실패를 공개하고 반성할 기회도 없다. 하나의 선택지뿐이다. 그냥 이 미래를 받아들여라.

나는 멘탈이 무너져도 이 일을 되게 하기 위해 나를 헌신했다 생각했다. 그러나 나보다 더한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된다. 모든 사람이 그가 과도한 책임을 맡고 있음을 알면서도 비난한 것을 안다. 내가 비난을 받아봤기에 더 잘 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책임자'라는 이유다. 그는 나보다 더한 비난을 듣는다. 사람들은 뒤에서 출신, 인격적 모독도 서슴치 않는다. 그가 하루하루 말라가는 게 모두가 알 정도로 잘 보이면서도 내 상황이 더 중요했다. 그러나 그가 괜찮은 척 하는 모든 순간, 무너지는 눈빛들이 보인다. 그저 내가 팀원으로써 여태 힘이 되어주지 못한 것이 반성될 뿐이다.

나는 이제서야 다 알고 있고, 여기에서 내 리더가 자신을 그만 탓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신을 지키고 부정한 행동을 하지 않은 점에 대해 존경을 표한다. 나보다 감당하기 힘든 모함과 비난을 들으면서도 본인을 소진하면서 고통을 참았다. 내가 겪은 고통에 비할 것이 아닐거다. 시간이 지나니 전체 관점에서 조직의 이 결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아직 완전히 체화된 깨달음을 갖기 전의 우리가 그들에겐 성공의 장애물이며 리스크가 맞다.

리더십의 결정들이 공개되기 전주 금요일, 우리 팀은 공유오피스 피어스에 모인다. 나의 리더는 지난 1년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배운 것이 있냐 묻는다. 나의 리더는 '틀릴 수 있다'라는 겸손을 배웠다 한다. 나는 '객관화'를 배웠다 한다. 내가 통제 불가능한 것을 통제할 수 있다 믿었던 것을 반성한다 한다. 누군가는 배운 게 없다 하고, 누군가는 그닥 말을 하지 않는다. 리더는 내 맞은 편에 앉았는데, 어려운 공지사항을 얘기한다. 본인이 밀려났으며, 그건 본인의 부족함에 기인한다고. 이 말을 할 때 목소리가 떨리는 게 보인다. 나는 다시 여전히 결정을 통보받는 현실에 화가 나면서도, 내가 어리석게 리더를 몰아 세웠던 순간들이 기억난다. 옥상에서 리더를 만난다. "웃으며 끝내기로 했지 않느냐"고 얘기한다. 이때 지하철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퇴사를 얘기하지 않았음에도 상호 끝을 직감한다. 끝은 생각보다 논리적이지 않다. 에너지의 소진에서 온다.

그만두기로 결정한 주차의 1:1에서 편지를 전한다. 그간 내가 여러 잘못을 한 것이 미안하지만, 여전히 존경한다고 했다. 존경하는 이유는 소신 때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표현했다. 그 어떤 것보다 그의 소신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퇴사를 하는 날, 의외의 연락들이 왔다. 나와 멀리 떨어져 있으며, 친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내게 '고생했고 응원한다'며 먼저 말들을 걸어왔다. 그 중에는 나를 공개적으로 싫어하던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말은 안해도, 다 보고 느끼고 있다. 나는 그간의 소신을 지킨 것들이 결국엔 '평판'이라는 자산으로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연락처에 저장한 소중한 인연들과 언젠간 만날 미래들이 있을 것이다. 이 응원을 잊지 말고 옳은 것을 밀고 나가야겠다 생각한다.

동일한 시기에 전체 조직의 수장이자 모두의 멘토인 사람도 그만두는 결정을 한다. 나의 판단은 동일하다. 그는 인간적으로 부정(not-right)는 절대 하지 않았고, 나는 그 측면을 가장 높게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다짐했던 우리의 미래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응원한다. 이 마음을 담아 문자를 보냈고, 아마 그의 감정이 정리된 후에 답장을 받았다. 모든 일의 끝에는 사람이 남는다. 나는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의 관계들을 소중히 여겨야지 다시 다짐한다.

  • 이 사건들을 재구성한다면 어떨까
이때는 재구성할 게 없다. 나는 끝까지 기능조직에 적응해보기로 한 것이 잘한 결정이라 생각한다. 막다른 상황에서는 조직을 위해 개인을 포기해야 하는 게 맞다.

내가 반성하는 것은 이때 내 리더의 감정을 좀 더 돌봐줬다면 좋았겠다. 나보다 더한 일들을 겪었을 거다.

  • 왜 이렇게 재구성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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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서의 회고

어떤 사건들은 떠올릴 때마다 진이 빠질 정도로 나를 소진시킨다. 한달 넘게 쉬었는데 여전히 체온이 오른다. 그래서 나는 이 기억이 다시 떠올를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피했다. 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발전은 직시할 때 이뤄지므로, 온전히 내 시간을 써서 모든 감정을 다시 느끼기로 했다.

지난 1년은 나의 모든 믿음이 박살난 시간이었다. "인간은 이성적이다." "나는 내 중심을 잃지 않는다." "나는 메타인지가 잘 된다.". 이 모든 것이 모든 순간의 경험으로 내게 반대로 돌아왔다. 나는 감정을 다양하게 느꼈고, 내 중심을 잃어도 봤으며, 인간은 메타인지가 웬만하면 잘 안된다는 걸 알았다. 내가 믿었던 것의 반례가 나 자신일 줄이야. 아직 몇몇 가시지 않은 장면들에 느끼는 감정들이 여전히 있다. 그러나 직시할수록 점점 더 나아지겠지 바란다.

그 소용돌이에 있을 때는 내가 이미 태풍에 쓸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예전에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살펴보니 이런 표현들을 하며 버텼다. "미친 악전고투". "어떻게든 되게 한다". "보여준다". 그러나 악전고투의 상황에 있을 때 내가 처절하게 부끄럽지 않다면, 나는 계속해서 실수하고 있는 것이며, 이게 점차 가속도가 붙으며 실패로 나를 끌고 갈 것이다. 태풍의 눈에 가서야 태풍 안의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필사적으로 차가워야 한다. 두렵고, 심장이 뛰고, 체온이 상승하는 게 정상이다. 그럼에도 이를 인식하고 차가워져야만 한다. 만약 나와 팀이 끓는 주전자 (Boiling Pot)이라면 이걸 식혀야 한다. 생존을 위해 제발 쉬어라.

하나 다행인 것은 기능조직으로 바뀌고 내게 여유 시간이 생기며 점차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런칭 후에는 "이 사건들을 재구성한다면 어떨까"의 섹션에서 쓸 말이 별로 없다. 깨달은 배움이 있고, 그 배움을 적용한 장면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하다 못해 내 반성이 속을 썩어들게 하는 일은 없게 해서 다행이다. 나는 남은 결과는 없지만 내겐 값진 배움과 사람이 남았다. 내 밑바닥을 공유하고도 나를 떠나지 않을 소수의 사람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

나는 나와 동일한 문제들을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길 바란다. 나의 별 것 아닌 경험들을 통해 얻은 배움을 얘기하자면, 크게 두 가지다. 1)겸손은 생존이다. 2)나를 지켜야만 한다. 이다.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겸손을 갖추면서도, 나의 코어를 흔들 정도로 나를 상처받게 하는 것들을 허용하면 안된다. 나는 직시를 통해 이 배움을 얻어서 참 다행이다. 이를 가능하게 만든 것에는 큰 공감과 깨달음을 준 책, 박소령 작가의 <실패를 통과하는 일>이 있다. 이 책은 여전히 이성으로써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내게 고통을 직시함으로써 얻는 치유의 경험, 그리고 이성보다 감정에 '그만 둠'의 원인이 있음을 알게 했다. 곧 이 책의 리뷰를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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